이래서 여수와 구)돌산현 진실된 역사를 샅샅히 제대로 밝혀내야 한당께~!
-
- 첨부파일 : yd.jpg (265.6K) - 다운로드
본문
여수시승격 70주년 앞으로 54일
조선시대 여수의 역사를 더 알고 싶은 만큼 여수도호부에 대해 궁금한게 있다면??
여수만의 그것이 알고 싶다)여수현이 혁파되고 임진.정유난이후 여수의 복현운동이 활발해져 결국에는 여수도호부가 세워졌는데 순천부 관리들과 아전모리배들의 불만과 반발로 훼방을 떨어 3번이나 혁파를 당했다고 알고 있다.
1696년, 1725년 9월~1726년, 1750년추정으로 삼복삼파시기로 알고 있다.
여수도호부의 관할구역으로는 여수, 소라, 삼일, 율촌, 용두(현 해룡면)등 5개면만 관할로 보고 있는 만큼 왜? 구)돌산현지역도 포함되지 못했는지 그것이 알고 싶은 생각이 아닐수 없다.
이성계 역성혁명에 반항을 하지 않았음에도 어이없이 죄없게 1414년에 순천도호부에 합병이 되었다는 점에서 돌산도 복현운동을 했는지 안했는지 모르겠으며 만약에 여수와 돌산이 하나로 단합을 해서 여수도호부로 독립되었거나 아니면 돌산현까지 신설되었으면 혁파까지는 안되더라도 군.현으로 나마 남을수 있을지도 모를것이다.
여수현과 돌산현지역이 한때는 같은 마한 원지국이었지만 백제때부터 억지로 갈라 놓다사리했고 또한 조선시대는 전역이 순천부땅이 되어버렸는데 돌산도 복현운동을 설사 했더라도 실패했을 가능성이 컸을지도 모르겠지만 돌산현역사를 제대로 규명되어야 알수 있을것 같다.
아니면 여수현 백성들이 구)돌산현지역 주민들과 손잡고 복현을 해야겠다는 것을 생각도 했던 1인도 없어서 못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순천부가 왜? 여수도호부를 세번이나 없애버렸던 이유도 행정관할범위의 공백 즉, 돌산현지역이 월경지가 되어버려 자기네들의 영향력이 줄어든다는 이유도 배제할수 없을것이다.
또한 귤.유자.밤.진귀한 해산물등으로 인한 임금님 진상품의 보고이고 여수현의 인구가 순천부의 절반으로 알고 있는지라 순천이 절대 가만둘수 없는 이유등이겠지만......
여수현지역만 여수도호부로 있음으로 인해 구)돌산현지역이 동요함으로 인해 여수도호부로 편입내지 독립으로 이어져 지들의 영향력이 더 줄어들까 우려감때문에 여수도호부를 세번이나 혁파에 애를 쓴것일수도 있을것이다.
필자는 역사학이나 사회관련 전공을 하는 사람 아니지만 그래도 여수발전이라면 지역의 역사를 최소한이라도 알아야 하는 만큼 여수시는 여수 스스로마저 알지 못했고 숨겨 있었던 역사의 여러장면들을 다 찾아내줄것을 강력히 촉구하며 또한 돌산현역사도 진상규명하듯이 재조명되어 여수시민들은 물론 돌산읍주민들의 제대로 된 지역사를 알게 될수 있길 그런날이 오길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돌산과 여수로서는 각각 완도권지역 백성들과 이도재공으로 인해 완도,지도군설군(흑산도권,백령.대청권,안면도지역도 군신설 포함시켜주면 좋았을걸......)과 함께 1896년과 1897년에서야 용두면을 잃은체 순천군에서 벗어나 1914년 군면폐합이라는 개악을 통해 다시 원지국의 영역수준?으로 되돌아간거나 마찬가지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여수의 역사를 생각하면 완전히 구한말기준 신설행정구역이나 마찬가지인 통영(진남군),완도군,울릉군급이나 마찬가지로 빈약해도 너무 빈약한거 같다는 생각이 아닐수 없다는 거다.
그래서 여수현 중심지인 여수현치소가 있는 성과 돌산현 치소가 있는 곳 마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지 않을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이닌가?
여수시승격 70주년 54일인 만큼 여수시로서는 여하튼간에 두말없이 여수와 구)돌산현지역 역사의 모든것을 다 샅샅이 제대로 된 진실들이 알려지길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