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세기의 대결: 끝장대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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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검승부
2017-12-15 16:45 1,68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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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세기의 대결: 끝장대결’이 시작되었다

세종에게는 ‘있고’, 재인에게는 ‘없는 것’

 

김광수: 정치학(북한정치) 박사 / ‘수령국가’ 저자

 

필자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지난 8월 21일 “북-미대결의 산물, 북핵”에서부터 시작하여 11월 16일 “북핵 대결 3라운드, ‘담대한’ 시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에 이르기까지 『통일뉴스』에 연재된 결론과 똑같아서 그렇다.
 
그 전제로 다음과 같은 문장을 하나 만들려고 한다. “드디어 ‘세기의 대결: 끝장대결’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기존 인식과는 완전히 다른 ‘또 하나의 시각’을 선보이고자 한다. 이른바 ‘페리적 시각’이 그것이고, 있는 그대로 봤을 때 우리가 기간 놓쳤던 부분을 제자리로 원위치 하면 되는 그런 결론이다.
 
시작은 이렇다. 우리가 흔히 그냥 부르고 있는 북한(North Korea)이라는 나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PRK)이 정식 국가명이다.

 

그런데도 우리한테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보다 북한이 더 익숙한 국가명이 되었다. 서방(한·일을 앞세운 미국 주도의 서구제국주의세력)의 악마화 프레임이 만들어낸 악마화된(Demonized) 가상의 북한이 그렇게 우리 현실로 들어와 있어서 그렇다. 
 
이유는 아마도 북한이 한국, 일본, 유럽, 북미 등, 이 지구상 대부분의 국가들과는 달리 미국에 맞섰기 때문일 것이다. 해방 이전-가쓰라·태프트 밀약과 분단,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정전체제와 북핵 대결까지 장장 60여년 북·미대결사 전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양보 없이 팽팽히 맞서 온 북한이기 때문이다. 

 

특히,1994년 1차 북핵 위기 이후부터는 이 지구상에서 거의 유일하게 세계유일 초강대국 미국에 홀로 맞서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연방은 해체되고 동구권은 몰락하여 진영과 블록으로서 사회주의체제가 자리를 잃어가고, 그때는 또 중국도 ‘개혁개방’에 바빠 정신을 못 차리던 상황과 맞물려 이러한 현상은 더 깊어져만 갔다.

 

비례해서 미국 자유민주주의체제와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은 극대화되고, 사회주의에 대한 좌절은 그 반대와 맞닿아 있었다. 하여 “마지막 남은 사회주의반제자주국가의 붕괴도 멀지 않다”고 믿던 때다. 상황이 그러하니 고립무원에 빠진 북한에 대해서도 붕괴 내지, 정권교체(Regime Change)가 시간문제라고 인식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할 때다.

 

“반년 길어야 2-3년 내 붕괴설”이 풍미하며 북한체제 내에서도 주체사상의 설계자 황장엽이 이때 망명해와 그러한 가설은 기정사실화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의 결론을 국제정치사에 남겼다.
 
고립압살은커녕 20년 뒤(2006) 북한은 자신을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자력자강하여 우주 핵강국 지위에 우뚝 올려 세운 뒤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는 핵·경제 병진노선으로 온 나라를 사회주의 강성국가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전체제 이후 60여년 계속된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세력의 끝없는 침략 기도를 좌절시킨 결과이다. 물론 이 과정에 북한의 입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상상키 어려운 온갖 희생과 고난이 뒤따랐음도 분명하다.

 

그러나 북한은 그 희생과 고난을 뒤로 하고 500년 서구중심의 세계사가 아닌 반제자주에 기초한 자신들만의 새로운 세계사를 써냈다. 지금도 여전히 ing하면서 미국이 쳐놓은 온갖 종류의 덫을 이겨나가면서 ‘끝장 대결’을 진행시켜 나가고 있다.

 

최후승리가 미국에게 갈 건지 아니면 북한에게 갈 건지 유례없는 세기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소연방이 해체되고 현실사회주의가 없는 조건과 아직은 G2로 부상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힘에 부치는 중국의 중화주의를 대신해 고구려 기질을 그대로 이어받은 북한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미국중심 시각의 거의 모든 기준, 예상, 분석, 해석, 전망 특히 그릇된 희망적 기대가 모두 뒤집혀가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그렇다는 것이다. 이전 예도 많이 있지만 가장 최근 예 한 두 개만 들어보자. 미국 16개 모든 정보조직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 제임스 클레퍼 전 국장의 발언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수용하고 관리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북한의 비핵화는 더는 미국의 협상 카드가 아니다.(『조선일보』, 2017-08-14)”
 
즉 오늘 핵위협을 걱정하는 쪽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란 것을 솔직담백하게 드러낸 것이다. 어느 순간 주객이 전도되었고, 북한은 자신들에게 60년 넘게 일방적으로 가해진 극단의 비대칭 침략대결구도를 그렇게 뒤집어 버린 것을 거짓 없이 고백한 것이다.
 
두려움과 공포감도 묻어난다. 마이크 멀린 전 미국 합참의장은 2017년 11월 26일(현지시각) ABC 방송에 출연해 임박한 북한의 국가핵무력 완성에 “무서워서 죽을 지경”이란 표현을 썼다고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전했다. 미국 지도층에 팽배해있는 불안과 공포감 정도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제너럴샤먼호의 침략과 분단, 특히 1950년 한국전쟁 이후부터는 60년 내내 미국의 일방적 핵위협 속에 산 것은 북한이고, 주지하듯 핵위협을 한 쪽은 미국이었다. 바로 그 일방적 침략구도에 파열을 내고, 절대 불가능해보였던 비대칭 대결구도가 뒤집어져 미국의 공포와 두려움은 더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세에서 공세로, 침략구도에서 끝장대결 구도로, 그렇게 구도가 근본에서부터 바꿔진 것이다. 믿기 어려운 기적 같은 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방생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1등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고,

 

1990년대 소련과 동구권의 현실사회주의체제를 함락시킨 미국은 유일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아무도 부정 못할 때 동방의 조그마한 나라, 그것도 지정학적 위치 땜에 항상 외세의 침략대상이 되었던 그 북한이라는 나라로부터 미국지배질서 구도에 근본변화가 생겨났으니 이 어찌 미국이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럼 미국은 그러한 상황을 이미 예상했을까? (필자가 보기에는) 예상한 것 같다. 근거는 NPT탈퇴로 불거진 1994년 1차 북핵 위기 이후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북한 악마화에 극성을 떤 이유가 결과적으로 밝혀져서 그렇다.

 

그 중심에 제네바 합의가 있다. 패배의 경험-1950년 한국전쟁에서의 경험과 닉슨독트린의 유효함, 지정학적 위치로 인한 제3차 세계대전 발화가능성, YS대통령의 제2의 한국전쟁 반대 등 한반도에서의 제국주의침략전쟁이 일찍이 불가능하게 된 조건에서 미국은 결국 1994년 10월 당시 북한에 굴복한 것에 다름 아닌 제네바 북미기본합의서 체결에 사인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NPT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이후에도 그 악마화 프레임은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황장엽 망명을 통해 조작된 북한 붕괴 등으로 기정사실화되었고, 바로 그러한 현상들이 미국이 북한을 얼마나 불편하게 여기는지가 증명되는 중요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유일한 도전국가 북한을 붕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곤궁한 미국의 입장을 대변한다.   
 
이를 관성의 법칙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왠 관성의 법칙? 이유가 다 있다. 주지하듯이 관성의 법칙은 달리던 버스가 멈추더라도 그 힘의 진행방향으로 계속 진행하려는 관성 때문에 힘이 멈춘 그 상태로 되돌아오는 것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그 원리의 본질이라면 이를 미국과 북한의 대결사에 대입하여 설명해내면 다음과 같은 논리가 도출된다.

 

이미 미국과 북한의 전쟁대결은 미국에 의한 사상초유의 압살고립책동을 뚫고 북한이 핵을 보유하는 것으로 그 대결은 이미 끝났지만, 그 관성-아직도 여전히 미국 우위의 시각 때문에 그 ‘끝난’ 대결을 여전히 보지 못하는 현상의 지속으로 해석하면 너무 과한 해석일까?  
 
이제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바라봐야 한다. 정전체제 이후 60여 년간 북한을 악마화하여 북한보다 우월한 체제의 과시와 흡수통합, 북한붕괴라는 결과에 집착한 나머지 스스로 북한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보지 못하게 하고, Nation으로서는 반공이념과 한미동맹에 포박된 ‘실패한 국가’ 대한민국을 있게 하였다.

 

이른바 촘스키가 말한 대로 “실패한 국가”(Failed State) 대한민국이 만들어진 것이다. 선진국 클럽인 OECD 가입국이고, 4만 달러를 눈앞에 두고, 현존하는 가장 민주주의체제인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띄고 있다는 그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국가가 그것도 독립국가가 주권을 스스로 독립해내지 못해 미국을 끝없이 사대(事大)하며 제국주의 외세에는 NO 한번 하지 못하는 노예처럼 매달려 사는 그 국가의 운명에 관한 접근치고는 꽤 괜찮은 결론이어서 그렇다.
 
그 연장으로 북·미대결사를 볼 때 또 다른 하나의 해석- 승리한 북한?, 굴복한 미국?-이 우문(愚問)이 아니라 현문(賢問)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1. 골리앗과 다윗: 미국과 북한?

 

북미대결사를 봄에 있어 여전히 우리의 많은 인식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북한과 미국의 대결이 인구, 영토, 자원, 경제, 군사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외견상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극단의 비대칭 대결구도라는 프레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각종 지표가 보여주는 분명한 팩트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영토는 미국 50개 주 가운데 작은 한개 주 정도에 불과한 면적이다. 인구 또한 미국의 13분의 1 정도이다. 그것도 국토 80%가 산간지대여서 식량자급이 구조적으로 어려운 지리적 여건이다. 에너지원(전력, 석유 등) 또한 절대적으로 부족하다.(이에 대한 반론으로 석유매장량이 1470억 배럴로 세계3위이며 원화로는 1경 5000조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설에 불과하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중국은 개혁개방에 정신이 없고, 소연방과 동구권은 완벽히 해체된 사면초가 상태에서 세계유일 초강대국을 상대로 혈혈단신 맞선 역사가 북미대결사였기 때문이다. 하여 그 싸움은 1대 1 대결이 아니었다. 1대 100 정도 대결이었다고 해야 맞는 것이다. 북한의 ‘일당백’ 표현이 과장, 허풍일 수만은 없었음이 거기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100”이란 숫자엔 대북 고립압살 책동의 동북아 돌격대쯤 되는 일본, 한국과 함께, 이 지구상에서 미국의 힘에 굴복한 모든 국가들이 포함되었을 것임은 물론이다. 여기에다 미국 지배의 모든 국제조직들, IMF, 세계은행 같은 국제금융기구들 또한 포함되었음은 불문가지이다.

 

더해서 미 정부 예산으로 창설, 운영되는 ‘세계최대규모 NGO’라는 NED(전국민주재단)나 CIA의 지원을 받는 ‘자유’, ‘민주’, ‘인권’ 명패의 온갖 NGO조직들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100이란 숫자가 과장일 수가 있겠는가? 상상력을 확장하여 군사비에도 이 “100”의 숫자는 적용이 가능하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2017년 4월 24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6년 세계 군사비 지출 보고서'에서 전 세계 2016년 군사비가 1조6천860억 달러(약 1천930조4천400억 원)인데,

 

이중 북한과 적대국가에 있지 않는 중국, 러시아, 비동맹 국가 등을 제외하면 10억 달러 내외의 북한과는 100이라는 숫자에 주목할 수 있다. 이렇듯 군사비 측면에서도 북미대결은 1대 100 대결이었던 셈이다. 비교자체가 불가능한 극단의 비대칭 대결구도였다고 해석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다.
 
그 100에는 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연재해마저 계속된 1990년대 후반 극한의 “제2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미국의 그 항복요청에 양자회담, 4자회담, 6자회담 등 온갖 종류의 다자틀 대화로 미국에 굴하지 않았던 북한의 모습도 있다.
 
그런데도 미국은 북한을 공격하지 않았다? 참으로 의아스럽다. 그렇게 못 잡아먹어 안달 내던 미국이 먹잇감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 못 잡아먹는다? 참으로 설명이 가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인식의 함정 때문이다.

 

저절로 곧 멸망할 북한인데 뭣 하려 막대한 인명 피해와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군사적 공격을 할 필요가 없다는 미국적 사고가 우리의 뇌와 심장을 지배해서 그렇다. 과연 그런가? 그렇게 짐짓 여유 있는 너스레를 떨었지만, 실상은 북한이 그러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은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음과 같은 논리로도 이는 설명된다. 침략과 약탈을 그 본성으로 하는 제국주의가 먹잇감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 그것을 보고도 감히 참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쟁해서 이길 수 있는 국가들 모두는-이라크, 리비아, 아프가니스탄 등 수많은 국가들은 그렇게 희생되어 갔음이 그 증명이다.

 

그런데도 북한만은 예외이다. 없던 아량이 갑자기 생겨나서 그랬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러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북한이었지만, 침략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힘이 오늘날 북한이 미국과 끝장대결을 볼 수 있는 원천이었던 것이다.
 
해서 북·미대결사를 미국적 시각으로 보면 외눈박이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게 외견상 불가능해 보였던-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처럼 보였던 첨예한 극단의 비대칭대결사가 소연방 해체와 동구권의 몰락으로 스스로를 세계유일초강대국이라고까지 부른 미국이 그렇게 지난한 60여 년간 북한을 고립압살하며 붕괴시키려 했지만,

 

결국에는 영해·영공·영토를 단 0.01 mm도 침범치 못하고 1994년 1차 북핵 위기 이래로 내내 우리가 기대했던 인식과는 정반대의, 즉 수많은 전쟁‘설’이 난무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북한과 소위 ‘대화와 타협’ 운운하며 시간 끄는데 전념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가 북·미대결사인 것이다.
 
소위 부시(I), 클린턴, 부시(II) 시대 모두 그랬고,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는 그 정점이었고, 지금의 트럼프가 내세운 ‘최대의 압박과 관여’도 북한과 전쟁을 할 수 없는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외롭고 곤궁한’ 선택지에 불과하다.

 

2. 또 하나의 해석: 구걸하는 미국

 

시간을 좀 뒤로 돌려 6자회담에 이르기까지 미국행동 패턴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미국은 북한과 전쟁을 하여 멸망시키고 싶었으나, 실제로는 전쟁을 수행할 수 없으므로 그 전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로 요약된다. 동시에 북한이 핵을 보유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상상해 낼 수 있는 것은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정부성명(주1)을 통해 "오늘 비로소 국가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이 실현되었다.(2017-11-29)"(주2)라 발표했지만, 이를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좀 더 직설하면 지금은 인정할래야 인정할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이유는 지금 인정하면 판이 다 깨져버리기 때문이다. 워싱턴 정치가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공화당, 민주당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 국민들은 멘붕(mental breakdown)에 빠질 것이고, NPT체제는 붕괴되고, 지금까지 국방정보국, 국가정보국(ODNI)은 무능이라는 무능은 다 뒤집어쓰고, 국가방위미사일(NMD)체계와 전역방위미사일(TMD)체계가 아무런 쓰잘데 없었다는 것이 탄로 나니 이 어찌 미국 워싱턴 정치가 감당해 낼 수 있겠는가?(주3)
 
그렇다면 가능한 상상력은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갖고 있는 나라와는 전쟁을 할 수 없는 국가가 미국이라면 미국은 이제 북한과 전쟁을 할 수 없다가 그 결론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전쟁을 할 수 없으면 대화와 협상을 통해 그 위협을 줄여야 한다. 그것이 상식이다.

 

곧 협상을 할 수밖에 없다는 당위가 발생하고, 지금은 트럼프 행정부가 그렇게 온갖 너스레를 떨면서 ‘최대한의 압박’을 하겠지만 조만간 ‘최대한의 관여’정책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협상의 시작과 함께, 미국은 북한에게 ‘국가핵무력 완성’은 NCND하자고 구걸할 것이다. 그러면서 모든 요구를 북한에게 다 들어주겠다고 싹싹 빌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항복문서에는 북·미수교, 평화협정 체결, 경제관계 정상화, 한미동맹 해체 등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을 것이다.

 

그래놓고 미국은 봐라. 북한과 이제 우리는 수교했다. 수교한 이유가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고, 북한은 절대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확답을 다 받았다. 그러니 자국민들은 이제 안심해도 된다. 뭐 그런 요상한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그렇게 그 충격을 이완시켜 국제사회와 자국민을 설득시켜 나가고자 할 것이다.
 
또한 ICBM을 가진 북한과 미국이 전쟁을 할 수 없는 이유에는 미국과 북한의 전쟁셈법이 다르다는 데도 있다. 즉 북한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미국 본토에 쳐들어가서 강점할 필요가 전혀 없다(북한은 워싱턴을 점령하고 공화국 깃발을 휘날릴 생각도 없고, 또 그렇게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전쟁이 일어나면 북한에 반드시 쳐들어가서 평양을 점령해야 한다. 다시 말해 북한에게 요구되어 지는 것은 미국의 워싱턴을 공격할 수 있는 전략 미사일 능력을 가져 핵탄두를 장착한 전략 미사일로 워싱턴, 뉴욕, 시카고 등 주요도시 몇 군데를 공격하면 미국은 항복하고 말기 때문이다. 다른 도시를 공격할 필요조차 없이 그렇게 보는 이유는 미국은 핵미사일 방어력이 전혀 없고, 무방비 노출이어서 그렇다.

 

거기다가 이들 도시는 평야지대에 만들어져있어 핵무기의 파괴력도 최고도로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도 그 원인으로 작용한다. 베트남 경험은 이를 분명 확인해준다. 자국에서의 전쟁도 아닌 베트남전에서도 군인사망자 수가 늘어나자 반전데모가 전 미국을 휩쓸었는데, 핵미사일로 미국본토가 공격받는다? 미 국민으로서는 돌아버리는 상황과 맞닿아 있다.

 

이에 비하여 북한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산악지대이고, 도시 대부분들은 오래 전부터 미국의 핵공격에 대비하여 견고한 지하방어시설을 갖추어 놓고 있다. 거기다기 인민들의 반미결사항전 정신과 어떤 전쟁이든 반드시 이긴다는 전쟁승리관도 갖춰져 있다. 자. 누가 승리할 것인가? 
 
미 워싱턴도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수백 기나 가지고 있으면서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몇 기 밖에 없을 북한을 공격하지 못하는 것이다. 전쟁을 한다면, 북한 전역을 초토화시킬 수는 있겠지만 평양을 점령하지 못하고, 오히려 워싱턴이 초토화되어져야 할 그 이유가 미국이 이 지구상 그 어디에도 전쟁을 마음 놓고 해도 북한과는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북한이 왜 그토록 ICBM을 가지려 했는지 그 마지막 남은 퍼즐이 맞춰지는 것이다. 한국전쟁에서의 경험 때문이다. 이때 북한의 경험은 미국에 대한 보복수단을 갖지 못해 북한 전역이 초토화된 경험을 갖고 있다.

 

바로 이러한 경험이 김정일 총비서로 하여금 미국과 맞서 싸우려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해야 한다는 추론으로 연결가능하다. 그 능력으로 미국이 자신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되고, 미국을 협상자리에 끌어낼 수 있게 된다고 본 것이다.

 

3. 원인과 결과: 미국의 패배
 
자타공인 세계유일 초강국이었던 미국이 도대체 무엇이 모자라 북한에게 그렇게 쩔쩔 매고 있을까? 무슨 이유 때문일까? 그 실마리를 정전협정까지 한 번 끌어올려보자. 그리고 그 패배의 역사를 연대기 순으로 한번 나열해보자. 그러면 뭔가 공통적인 패배요인이 발견될 수 있지 않겠는가?  

 

분단이후 정전협정에 서명한 자신을 “최초의 패전장군”이라 부른 클라크 때부터 오늘까지 계속된 북미대결사는 미해군 간첩선 푸에블로호 나포(1968)를 시발로 승무원 31명 전원을 동해에 수장시킨 미공군첩보기EC-121 격추사건(1969), 제네바북미기본합의서(1994), 백악관북미공동성명(2000), 6자회담 9.19공동성명(2005), 급기야 2007년 부시(Ⅱ)의 평화조약 체결요청 등은 자세히 들여다 볼 때 북미대결사가 미국주도 방식이 아닌, 북한주도 방식임을 확인해주고 있다.
 
이유는 모든 조건에서 말도 되지 않는 100의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다른 국가들-이란, 이라크, 리비아, 아프가니스탄 등과는 달리 제네바북미기본합의서 평화조약 체결요청까지 대화와 협상으로 그 대결의 장을 끌어내는 북한의 힘 때문이다. 다시 말해 ‘끌려가는’ 국가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것도 상상할 수조차 없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극단의 비대칭대결사 전 기간 동안 끝없는 수모와 패배를 경험한 당사자 국가가 불가사의하게도 북한이 아니라 명백하게 미국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 불가능하게 보였던 결론을 오로지 북한 혼자서 만들어 나가고 있다면  그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 하겠다.

 

길게는 분단 이후, 더 길게는 제너럴셔먼호, 더 짧게는 1994년 1차 북핵 위기 이후 미국과의 20여년 비대칭대결을 전쟁은 억제하고-그 수많은 전쟁‘설’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핵을 보유함으로써 그 핵보유의 힘으로 평화적인 방식을 유도-대화와 협상의 방식으로 평화협정과 불가침조약 체결을 이끌어내려 하고 있는 북한의 전략적 결단과 용기를 우린 어떻게 평가해내어야 할까?
 
참으로 담대한 사고의 전환을 내와야 한다. 분단체제 성립 이후 내내 들어왔던 침략과 도발의 주범이 북한이었는데, 그 북한이 미합중국이라는 국가가 만들어질 때부터 원주민들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을 일삼았으며 이후 유일초강대국이 된 이후부터는 온 지구촌을 상대로 침략, 파괴, 약탈, 학살을 일삼았던 국가가 미국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있다면

 

이는 단지 우리가 북한이 우리와 같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띄지 않고, 미국이 힘이 있다하여 무조건 그 역사적 사실을 내 몰라라하고 무시하고 그렇게 왜곡인식이 합리화되어져도 괜찮은가하는 물음을 외면하는 것과 똑같다. 

 

하여 결론은 분명해져야 한다. 앞에서 계속 논한 ‘근본에서부터 뒤바뀐 북미대결구도에서의 변화를 인정해야 한다’로 말이다. 사실상의 미국 패배선언으로 수용해야 한다. 제임스 클래퍼 미국 전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CNN 방송에 출연하여 “미국은 이제 북한의 핵개발을 수용하고 관리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북한의 비핵화는 더는 미국의 협상 카드가 아니다(현지시각, 2017-08-13)”는 주장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주4)그리고 마침내 종지부가 찍혀졌다.

 

북한은 2017년 11월 29일 ‘화성-15호’ 발사를 성공시키면서 '중대보도' 형식의 '정부성명'에서 "조선노동당의 정치적 결단과 전략적 결심에 따라 새로 개발한 대륙간탄도로켓 화성-15형 시험발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됐다『조선중앙방송』"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른바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것이다. “오늘 비로소 국가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로켓 강국 위업이 실현 되었다.”
 
동시에 이제는 솔직해져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30일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북 ICBM 기술 완성 '미입증' 평가”를 했다는데 그런 걸로 북핵이 갖는 정치·군사적 의미를 폄훼해서는 안 된다. 시간 뒤에 숨어있어서는 안 된다.

 

북핵은 그런 시간의 문제차원을 훨씬 넘어 미국에게는 북·미수교 등 근본문제를, 대한민국에게는 ‘우리민족끼리’의 정신으로 되돌아오라는 정치적이고도 외교적인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이제 북핵문제는 완전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바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협상국면으로 전격 도래가 그것이다. 물론 당분간 미국은 유일 초강대국의 체면 때문에 ‘최대한의 제재’ 일환으로 원유공급 중단요구, 해방봉쇄와 같은 가능하지도 않는 방법으로 지금의 결론-북한이 미 본토 전역을 공격할 수 있는 ICBM을 가졌다는 그 팩트-을 호도하고 왜곡하려 하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과 협상테이블에 앉게 될 것이다. 이는 필자와 많은 사람들이 누누이 얘기해왔듯이 시간은 미국편이 아니라 북한편이고, 칼자루는 미국이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쥐고 있고, ‘전략적 인내’ 뒤에 숨어 시간을 끌면 끌수록 미국이 더 손해라는 사실이 곧 드러날 것임을 예고한다 하겠다.
 
그럼으로 문재인 정부는 이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공중전-외교와 국내정치에서는 미국과 일정한 손발을 맞춰 진행할 수밖에 없다하더라도 물밑에서는 북한과의 관계정상화에 대한 복선을 준비해나가야 한다. TFT를 꾸려 본격적으로 북·미관계가 정상화되었을 때를 대비해 북한의 속내파악하기에 돌입해야 한다.

 

6.15공동선언 제2항과 3항에 대한 본격적인 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10.4선언에 대해서도 버전업된 계획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제3차 정상회담과 본격적인 교류협력에 대비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문재인 정부는 분명 실패한 정부로 남을 것이다. 70% 지지여론에도 불구하고 그 포박된 박스권의 여론정권은 그렇게 결정되어 질 것이다. 촛불정부가 그렇게 역사에 기록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러니 대한민국 최고의 지도자인 대통령은 그렇게 여론을 관리만 하려 들 것이 아니라 여론을 만들어가는 용기와 철학을 보여줘야 한다. 세종과 정조 등 성군들은 민심과 함께하기도 했지만, 그 시대의 상황을 주도해 갔던 것이다. 이른바 시대정신을 개척해 나갔던 것이다. 그런 문재인 대통령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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