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주적 공언 자체가 헌법 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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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주적 공언 자체가 헌법 위반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헌헌법에서부터 존재하는 조항이다. 헌법 제정과정에서도 국회에서 이 조항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당시 삼팔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갈라진 현실에서 이 조항을 통해 삼팔선 이북지역을 우리 영토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한가가 논란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때도 삼팔선 이북지역을 헌법에서 우리 영토로 선언함으로써, 그 지역을 되찾아 통일을 이루는 염원을 간접적으로 담는 것으로 이 논란은 정리되었다.
전쟁 후 휴전선으로 남북이 갈라지면서 이 영토조항에 의해 휴전선 이북지역은 괴뢰집단이 점령한 미수복지역으로 남게 됐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영토로서 우리의 주권과 통치권이 미쳐야 할 북한지역에서 우리의 정당한 주권과 통치권 행사를 방해하는 북한 정권은 법적으로 ‘반(反)국가단체’가 됐다.
이 반국가단체를 지지·찬양하거나 이들과 회합·통신하는 자 등을 처벌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졌다. 즉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이 국가보안법의 헌법적 근거가 된 것이다.
헌법 제4조는 평화통일조항이다.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했다. 현행헌법에서 신설된 조항이다.
이 헌법 제4조에 근거해 1990년 노태우 정부에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91년에 남한과 북한 정권 사이에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즉 남북합의서가 교환된다.
이 남북합의서에서 북한 정부를 사실상 정부로 인정한다. 이즈음에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도 이루어진다. 유엔헌장은 회원의 자격을 ‘국가’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은 남한 정부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 정부를 국가로 간접 승인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그러자 북한을 ‘사실상의 정부’나 국가로 인정하는 현실에서 헌법상의 영토조항이 평화통일조항과 충돌을 일으키고 통일정책에 걸림돌이 되는 독소조항이라며 개헌을 통한 영토조항 삭제를 주장하는 견해들이 국제법학자와 일부 헌법학자들 사이에 대두되었다.
또한 다른 쪽에서는,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점 등을 근거로 평화통일조항보다 영토조항이 여전히 우위에 있다는 견해도 주장되었다.
영토조항 삭제론이나 영토조항 우위론이나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과 제4조의 평화통일조항이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었다.
헌법상의 영토조항과 평화통일조항에 대한 이러한 대립은 그 후 두 조항을 조화적 관계에 있다고 보는 견해가 학계의 넓은 지지를 얻으면서 일단락되었다.
이제 학계는 영토조항을 휴전선 이북지역을 우리의 영토로 선언함으로써 북한지역에 대해 대한민국의 주권적 권력을 실현할 책무, 즉 ‘통일의 책무’를 부과하는 조항으로 본다. 즉 영토조항도 통일조항의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뒤따라 나오는 평화통일조항은 그러한 통일의 방법과 성격이 ‘평화’통일이어야 함을 천명한 조항으로 해석한다. 그 후 헌법재판소는 1997년에 선고된 국가보안법 제8조 회합·통신죄 사건 결정 등에서 법적으로 ‘북한 정권의 이중적 성격론’을 꺼내든다.
즉 영토조항을 근거로 북한 정권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면서도 평화통일조항을 근거로 북한 정권을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라고 판시한 것이다.
이렇듯 유권적 헌법해석기관인 헌법재판소도 북한 정권의 성격을 이중적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법적으로 주적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는 않다.
주적은 법률용어가 아니라 군사용어다. 국방백서에 잠깐 실렸다가 지금은 사라진 용어다. 따라서 법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대통령이나 대통령 후보가 북한주적론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북한주적론을 언급하는 순간, 남북이 ‘화해 협력’이 아니라 ‘적대적 대결’로 치달을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북한주적론을 대통령이나 대통령 후보가 공언하는 것이야말로 헌법 위반이다.
남북 간의 긴장 완화를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음으로써, 결과적으로 헌법 제66조가 대통령에게 부과하고 있는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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