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에 들어가면 하루종일 안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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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박근혜와 영적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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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정두언 전 의원은 27일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내가 과거에 모든 사람들이 경악할 것이라고 박근혜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들 밥도 못먹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아래 글은 믿거나 말거나 소문 같아요)
박정희도 두손을 든 박근혜의 엽기적인 애정행각
70년대 박근혜와 최태민의 부적절한 관계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당시 20대였던 박근혜가 아버지보다도 5살이 많은 최태민과 놀아난 것은 박정희의 엽색행각 만큼이나 엽기적이다.
위키리크스에서 폭로한 바와 같이 전 주한미대사 버시바우는 “최태민이 인격형성기에 박근혜의 몸과 영혼을 완전히 통제했다며 최태민을 한국의 라스푸틴”으로 평했다. 라스푸틴은 제정 러시아 말기에 수도사로 거대한 성기와 타고난 정력으로 니콜라이 2세의 황후 알렉산드라를 괴어 국정을 농단하고 제정 러시아를 몰락으로 이끈 세기의 기인이다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여성의 회고에 따르면 박근혜와 최태민이 뒤엉킨 다음날 아침에는 침실에 각종 피임기구들과 변태적 성기구들이 널려있어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고 한다,
늙은이가 젊은 여성 그것도 ‘퍼스트레이디‘의 몸과 영혼을 완전히 통제“하려면 아마도 매우 특별한 능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박근혜가 7인회의 늙은이들에게 집착하는 것은 정치적인 이유때문이 아니라 최태민에 대한 그리움이나 늙은이에게만 흥분하는 변태적인 성적 취향 때문일지도 모른다
박정희는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 때문에 골머리를 알았다고 한다, 10.26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김계원은 “그놈(최태민)이 그 년(박근혜)을 홀렸다” “최태민과 박근혜에 관한 보고서가 올라오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고 박정희의 심정을 술화하기도 했다, 김재규는 항소 이유서에서 최태민 문제를 박정희를 살해한 이유 중에 하나로 꼽았다, 결국 제 아비를 죽인 셈이다.
최태민과 20년 교류한 전기영 목사는 “최태민-최순실 부녀 무당이 박대통령을 망쳤다“ 고 최태민씨와 20여년간 교류했던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최씨와 겪었던 일들을 설명하고 있다, 서산=신진호 기자
최태민-최순실은 주술가이자 무당이다, 부녀가 대를 이어 박근혜대통령을 망쳤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는 말은 최씨 부녀에게 딱 맞는 얘기다“고 최태민씨와 20년간 교류한 충남 서산 충성교회 전기영 목사가 31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 목사는 1970년대 말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 부총회장으로서 당시 총회장이던 최태민씨를 만났다고 했다, 그가 최씨를 마지막으로 본건 1993년 10월이라고 한다, 전목사는 “서울 만남의 교회 지하실에서 최씨를 만났는데 전국에 있는 근화봉사단원을 이끌고 박근혜를 도와달라는 말을 했다“며 당시 은행에 있던 13억원과 이자 9천만원을 사용하라고 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태민을 만났을 때 귀신이 들린게 보이길래 ‘네 정체가 무엇이냐’라고 야단쳤더니 지하에서 1층으로 도망갔다”며 그 일이 있는 후에 최씨를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 목사에 따르면 최태민씨는 1974년 육영수여사가 사망한 뒤 청와대로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육영수여사가 최씨의 자신의 꿈에 나타나 “박근혜를 도와주라”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전 목사는 편지가 전달된 뒤 최씨는 검은색 승용차를 타고 청와대로 들어갔다“며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고통스러워하던 당시 박근혜에게 육 여사의 표정과 음성을 재연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박근혜가 기절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1979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작성한 최순실 부친 최태민 보고서]
보고서에는 최태민에 대한 구체적인 비위사실, 여자관계, 이권개입 등의 사례와 내용이 구체적으로 나열돼 있어 정보기관의 보고서임을 감지할 수 있다, 이보고서에 따르면 최 목사는 천주쇼, 불교, 기독교를 결합한 신흥종교인 “영혼합일법”을 설파했다.
최태민은 1975년 박근혜에게 3차례에 걸쳐“ 고 육영수여사가 꿈에 나타나 근혜를 도와주라”고 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면서 만나게 됐다. 그는 첫 만남에서 교계의 난맥상을 개탆며 구국선교를 역설, 박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대한구국선교회를 설립하고 전국의 동 단위까지 조직을 확대해 최대 300만명의 단원을 확보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태민은 이 단체가 조직된 이후 14건의 횡령,사기,변호사법 위반, 권력형 비리, 이권개입, 융자브로커 등의 비위행각을 했던 것으로 보고서에 적혀 있다. 또 , 여성추문과 관련 12건의 내용이 적나라하게 기술되어 있다.
[최 태 민]
◆신원 사항
○인적사항
▷원적 :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읍 서동 34
▷본적 : 경남 양산군 웅상면 삼호리 532
▷주소 : 서울 강남구 역삼동 689-25
▷직업 : 전 대한구국봉사단 총재
▷출생 : 1912.5.5.(1994년 사망)
○사용 성명(총 7번 개명)
▷최도원 : 선녀가 지었다는 아명
▷최상훈 : 월남 후 개명. 경찰,육군 및 해병대 비공식문관 재직시 사용
▷최봉수 : 부산 거주시
▷최퇴문 : 법명, 77.39 이전 호적상 성명
▷공해남 : 천주교 중림동 성당에서 영세시 개명
▷방민 : 계시에 의해 개명하였다고 자칭, 영혼합일법 등 사이비 행각시 사용
▷최태민 : 75.4 대한구국선교단 총재 취임계기 개명 77.3.9 이후 호적상 성명
◆비리사실
○ 최태민은 영혼합일법(일종의 최면술) 등 사이비종교행각으로 전전하던 75.2 말경 박근혜에게 3차에 걸쳐 꿈에
“육영수여사가 꿈에 나타나 근혜를 도와주라”는 현몽이 있었다는 내용의 서신을 발송하여
▷75.3.6 박근혜와 접견, 당시 교계의 난맥상을 개탄하면서 구국선교를 역설
▷75.4.29 박근혜의 후원으로 자신의 심복 및 사이비종교인 중심으로 대한구국선교단(76.12.10 구국봉사단, 79.51 새마음 봉사단으로 개칭)을 설립하고 총재 박근혜는 명예총재로 취임하여 구국선교를 빙자, 매사 박근혜명의를 매명하여 이권개입 및 불투명한 거액금품 징수 등 이권단체화로 치부하는 한편
▷복잡한 여자관계와 반대파에 대한무자비한 보복 등으로 원성이 고조되자
○잠시 근신을 하는 듯 하면서 박근혜의 동정을 관망, 심복들로 하여금 자신이 아니면 봉사단 운영을 할 수없다는 양 박근혜를 현혹케하여 막후에서 봉사단을 관장하여 오다가(최태민 잡안은 이때부터 기업들에게 돈을 뜯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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