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말 글쓰기 대회 "금상"수상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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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지부
2005-10-06 16:55 1,87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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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지부 이희순 정책기획단장(민원지적과 호적담당)이 한글 인터넷주소 추진 총연합

회(http://hiau.org)가 주최하고 교육인적자원부, 문화관광부, 국립국어원, 한글학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외솔회, 전 교사모임, 한글문화세계화를 위한 국회의원모임,

넷피아, 내사랑코리아, 바른한글, 메타브랜딩(주), 한국문화사 등이 후원하는

“제1회 토박이말 살려 쓰는 글쓰기 대회”에 ‘산을 자르고 들을 가르니’를 응모하여

오늘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 행사장에서 ‘대학/일반부’ 금상(상금 백만원)을 수상하였

기에 조합원과 함께 축하합니다.


이희순님은 2004년 노동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263쪽에 이르는 “여수방언사전”을

펴내 제8회 공무원문예대전에서 저술부문의 장려상을 수상하는 등 우리시의 명예를

드높이고 있습니다. 더 많은 활동과 기대하면서 앞날에 건강과 영광이 함께하길 기원

하면서 작품 전문을 올립니다.


 산을 자르고 들을 가르니


사람들은 산을 자르고 들을 갈라 길을 내고는 그 길로 숨 가쁘게 차를 몹니다. 길을 가로지르던 고라니가 치여 죽고 너구리와 삵과 족제비도 죽고 남생이와 능구렁이도 깔려 죽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참혹하게 찢기고 짓이겨진 채 사늘하게 식어버린 주검들의 이름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저 ‘이름 모를 짐승’일 뿐입니다. 우리들은 코끼리와 원숭이, 사자와 표범과 펭귄은 훤히 알고 있지만 정작 ‘우리 것’은 잘 모릅니다. 많은 야생동물들의 씨가 말라버렸거나 멸종위기에 놓이고 소쩍새와 스라소니와 삵이 우리 곁에서 가뭇없이 멀어져 가듯, 살가운 우리말은 세계화의 거센 물살에 소쿠라져 멍이 들고 ‘영어’라는 괴물한테 짓눌려 몸부림을 칩니다.

낯선 동리로 이사를 하면 마을사람들의 낯을 익히고 이름 아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지요. 온전히 낯을 익히고 이름을 외우면 ‘낯설다’는 핑계는 얼추 사라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알고 이름을 알게 되면 금방 친해지게 마련입니다. 옛날 옛적부터 우리 조상님과 함께 이 땅을 지켜온 온갖 나무와 풀은 말 할 나위없고 길짐승과 날짐승, 작은 벌레들을 만나 생김생김을 익히고 낱낱이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그들은 모두 새로운 사랑으로 다가옵니다. 그들의 이름은 거의 모두 토박이말로 되어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남편 성화를 못 이겨 어느 야생화 단지를 구경했습니다. 시어머니 병구완하느라고 골병이 들었는지 온 삭신이 아파 제대로 갱신을 못하는 줄 번히 알면서도 딴에는 날 짠하게 여겨 설레발치는 이녁 속내를 마냥 모르는 체 할 수 없어 짐짓 따라나섰던 게지요. 그 야생화 단지에는 틀림없이 여러 가지 우리 꽃과 이 땅의 풀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지요. 또 귀한 풀과 꽃의 표본도 잘 마련되어 있었지요. 하지만 그 곳에 다정한 내 이웃들은 없었습니다. 마을 빈터와 개울가와 길섶에서 스스럼없이 만나는 망초와 가막사리, 쇠비름과 바랭이, 사위질빵과 한삼덩굴과 며느리배꼽, 명아주와 쇠무릎은 아예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땅의 진짜배기 주인들을 다 어디로 귀양 보내고 왕가와 귀족가문의 족보만 한껏 내걸어 놓았는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문득, 허황된 사람들이 우리말을 쓰자며 묵무덤을 마구잡이로 파헤쳐 ‘죽은 말’을 꺼내서는 살려내자고 같잖은 신소리를 해대는 뇌꼴스러운 세태를 보는 듯하여 영 마뜩찮았습니다. 그래쌓는다고 ‘미르’나 ‘즈믄’이 되살아 날 리 없건만 죽은 아이 고추 만지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묵무덤은 그대로 내버려 두고 폐와 심장과 신장에 시달리는 허파와 염통과 콩팥을 구하고, 백혈구와 모세혈관의 올무에 걸려 헐떡거리는 흰피톨과 실핏줄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는 우리 조상님을 대물림하여 우리와 함께 숨 쉬고 땀 흘리며 살을 섞어 살아가고 있는 토박이말 넉장거리도 만나고 허방도 짚고 때로는 몽짜도 부리고 해금내도 맡으면서 살아가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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